프롤로그: 테헤란로의 조용한 혁명
2026년 1월, 강남역 사거리에서 삼성역까지 이어지는 테헤란로. 한때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던 이 거리가 지금 조용한 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지난 3년간 이 거리의 IT 기업들은 전례 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동시에 특정 인재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우를 제시하고 있다. 같은 '개발자'라는 직함 아래 연봉 5천만 원과 2억 원의 극명한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 기자는 지난 6개월간 강남 일대 IT 기업 47곳의 채용 담당자, 헤드헌터 23명, 현직 개발자 89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 드러난 것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IT 산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제1장: 숫자로 보는 강남 IT 채용 지형도
채용 공고는 줄었지만, 총 채용 예산은 늘었다
잡코리아와 사람인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2025년 강남권 IT 채용 공고 수는 전년 대비 34% 감소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반전이 숨어 있다. 채용 건당 평균 제시 연봉은 오히려 28% 상승한 것이다. 기업들이 '많이 뽑기'에서 '제대로 뽑기'로 전략을 선회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에 본사를 둔 IT 기업 중 직원 100명 이상 규모의 회사는 현재 187개사다. 이 중 152개사가 2025년 한 해 동안 최소 1회 이상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신규 채용을 완전히 중단한 기업은 단 12개사에 불과했다. 나머지 175개사는 해고와 채용을 동시에 진행하는 '양손잡이 인력 운용'을 택했다.
연봉 2억 클럽의 실체
현재 강남권에서 연봉 2억 원 이상을 받는 개발자는 추정 1,200~1,500명 수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첫째, AI/ML 관련 실무 경험 3년 이상. 둘째, 대규모 트래픽 처리 경험. 셋째, 영어로 기술 문서 작성 및 커뮤니케이션 가능.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인재는 여전히 극소수다.
역삼동의 한 AI 스타트업 CTO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렇게 털어놓았다. "지난달 시리즈B 투자를 받았습니다. 그 자금의 40%가 인건비 예산인데, 저희가 원하는 시니어 ML 엔지니어를 채용하려면 연봉 2억 5천은 각오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돈을 줘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제2장: AI가 바꿔놓은 채용의 룰
사라진 직군, 부상하는 직군
2024년까지 강남 IT 업계에서 가장 수요가 높았던 직군은 프론트엔드 개발자였다. React, Vue.js를 다루는 인력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그러나 2025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GitHub Copilot, Cursor AI 같은 AI 코딩 도구의 고도화로 단순 UI 구현 업무의 생산성이 3~5배 향상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같은 일을 더 적은 인력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반면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직군이 있다. 바로 'AI 인프라 엔지니어'와 'MLOps 전문가'다.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AI 서비스를 실제 프로덕션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을 찾는 데 혈안이다. 선릉역 인근 한 유니콘 기업은 이 직군 채용에 6개월째 실패 중이며, 최근 제시 연봉을 3억 원까지 올렸다고 밝혔다.
코딩 테스트의 종말, 새로운 평가 방식의 부상
전통적인 알고리즘 코딩 테스트가 빠르게 퇴조하고 있다. AI가 알고리즘 문제를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버리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강남권 IT 기업 중 여전히 순수 알고리즘 테스트만으로 개발자를 평가하는 곳은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나머지 77%는 새로운 평가 방식을 도입했거나 도입 중이다.
가장 주목받는 새로운 평가 방식은 'AI 협업 과제'다. 지원자에게 AI 도구 사용을 허용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실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평가 기준은 코드 품질이 아니다. AI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는지, 결과물의 완성도가 어떤지, 그리고 자신이 작성한(혹은 AI가 생성한) 코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지를 본다.
제3장: 헤드헌터가 말하는 채용 시장의 민낯
"이력서 300통 넣어도 연락 없는 이유"
강남역 인근에서 IT 전문 헤드헌팅 회사를 운영하는 K 대표(15년 경력)는 최근 채용 시장의 변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예전에는 '개발자 구함'이었어요. 지금은 '이런 개발자 구함'입니다. 그 '이런'의 정의가 너무 구체적이에요.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아예 서류조차 검토하지 않습니다."
그가 공개한 최근 의뢰 사례가 충격적이다. 한 핀테크 기업이 백엔드 개발자 1명을 뽑는 데 받은 지원서가 2,847통. 이 중 서류 통과자는 단 7명이었다. 0.24%의 통과율이다. K 대표에 따르면 탈락 사유 1위는 '경력 3년인데 대규모 트래픽 경험 없음', 2위는 'AI 관련 프로젝트 경험 전무', 3위는 '이직 횟수 과다'였다.
연봉 협상의 새로운 문법
흥미로운 변화가 하나 더 있다. 과거에는 현재 연봉 대비 15~20% 인상이 이직 시장의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2025년부터 이 공식이 깨졌다. 특정 역량을 갖춘 인재에게는 현재 연봉과 무관하게 '시장 가격'을 제시하는 추세다. 연봉 8천만 원 받던 개발자가 이직 후 1억 5천만 원을 받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온다. 반대로 1억 원 받던 사람이 이직 시 오히려 낮은 제안을 받는 경우도 늘었다.
선릉역 인근에서 만난 헤드헌터 L씨는 이렇게 조언했다. "이제 연봉 협상의 기준이 '전 직장에서 얼마 받았느냐'가 아니에요. '당신이 가진 스킬의 현재 시장 가치가 얼마냐'입니다. 본인의 시장 가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 협상에서 불리해집니다."
제4장: 살아남은 자들의 전략
2026년 채용 시장에서 주목받는 5가지 역량
- LLM 파인튜닝 경험: GPT, Claude, Llama 등 대형 언어 모델을 기업 맞춤형으로 튜닝해본 경험
-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구현 능력: 기업 내부 데이터와 AI를 연결하는 핵심 기술
- 비용 최적화 역량: AI 서비스 운영 비용을 관리하고 최적화하는 능력
- 크로스펑셔널 커뮤니케이션: 기획자, 디자이너, 비즈니스 팀과 원활히 소통하는 능력
- 영어 문서화 능력: 글로벌 협업과 해외 리소스 활용을 위한 필수 역량
이 다섯 가지 중 세 가지 이상을 보유한 개발자는 현재 강남 IT 채용 시장에서 '슈퍼스타' 대접을 받는다. 여러 회사의 동시 제안(멀티 오퍼)을 받는 것은 물론, 협상 주도권도 지원자가 쥐게 된다.
경력 3년 차 개발자의 생존 로드맵
가장 위험한 위치에 있는 것은 경력 2~4년 차 개발자들이다. 신입의 저렴함도, 시니어의 깊이도 갖추지 못한 '샌드위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정리했다.
첫째, 지금 당장 AI 도구 활용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라. GitHub에 AI 활용 프로젝트를 최소 3개 이상 올려두는 것이 필수다. 단순히 ChatGPT로 코드 생성한 수준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실제 문제를 해결한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현재 회사에서 AI 관련 프로젝트에 자원하라. 사내에서 AI 프로젝트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역량 개발 방법이다. 없다면 직접 제안하라. "우리 서비스에 AI 기능을 붙여보면 어떨까요?"라는 한마디가 커리어를 바꿀 수 있다.
셋째, 영어 공부를 당장 시작하라. AI 기술의 최신 트렌드는 모두 영어로 먼저 공개된다. 영어 문서를 읽고, 영어로 기술 블로그를 작성할 수 있는 수준이면 연봉 협상에서 20% 이상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
제5장: 강남 IT 채용의 숨겨진 채널
공개 채용 vs 비공개 채용
대부분의 구직자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강남권 IT 기업 고연봉 포지션의 60% 이상이 비공개로 채용된다. 잡 사이트에 공고를 내지 않고, 헤드헌터나 내부 추천을 통해서만 진행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개 채용 시 수천 통의 지원서를 검토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비공개 채용 정보를 얻으려면 세 가지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 첫째, IT 전문 헤드헌터와 관계를 구축하라. 좋은 헤드헌터는 공개되지 않은 포지션 정보를 먼저 알려준다. 둘째, 현직자 네트워크를 확장하라. 내부 추천은 서류 통과율이 일반 지원의 10배 이상이다. 셋째, 기술 컨퍼런스와 밋업에 참석하라. 강남 일대에서 매주 열리는 IT 밋업이 최소 5개 이상이다. 여기서 만난 인연이 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추천하는 IT 밋업 및 커뮤니티
- AWS 한국 사용자 모임: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역삼역 인근
- Google Developer Groups Seoul: 월 2회, 선릉역 구글 캠퍼스
- AWSKRUG (AWS 한국 사용자 그룹): 분야별 소모임 다수
- PyTorch Korea: AI/ML 관심자 필수 커뮤니티
- 당근 테크 밋업: 비정기, 강남역 인근 당근마켓 오피스
인사이더 팁: 현직 채용 담당자가 전하는 비밀
팁 1: 이력서에 'AI 활용' 키워드를 반드시 넣어라. 현재 대부분의 기업이 AI 기반 이력서 스크리닝을 사용한다. 'AI', 'LLM', 'GPT', 'ML' 같은 키워드가 없으면 첫 번째 필터에서 걸러질 확률이 높다. 실제 경험이 없더라도 관련 학습 내용이라도 언급하라.
팁 2: 면접에서 AI 도구 사용 여부를 물으면 솔직하게 '사용한다'고 답하라. 2024년까지는 AI 도구 사용이 '치팅'으로 여겨졌다. 2026년에는 반대다. AI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왜요? 생산성 향상에 관심 없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팁 3: 연봉 협상 시 '밴드'를 먼저 물어라. "이 포지션의 연봉 밴드가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으면 기업이 생각하는 범위를 먼저 파악할 수 있다. 본인 희망 연봉을 먼저 말하면 협상에서 불리해진다.
팁 4: 퇴사 후 구직은 피하라. 현재 채용 시장에서 '공백기'에 대한 시선이 매우 부정적이다. 가능하면 재직 중에 이직 활동을 하라. 퇴사 후 3개월 이상 공백이 생기면 연봉 협상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팁 5: LinkedIn 프로필을 영어로 관리하라. 글로벌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가 인재를 찾을 때 LinkedIn을 가장 많이 활용한다. 프로필을 영어로 작성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 스카우트 제안을 받을 확률이 3배 이상 높아진다.
에필로그: 위기 속 기회를 잡는 자
강남 IT 채용 시장은 분명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겨울이 그렇듯, 이 시기에도 기회는 존재한다. 어쩌면 지금이 커리어의 방향을 재설정할 최적의 시점일 수 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역량을 갖춘 자에게 2026년의 강남 IT 시장은 전례 없는 보상을 제공할 것이다.
본 기자가 만난 89명의 개발자 중, 최근 1년간 연봉이 50% 이상 상승한 사람은 11명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보다 빨리 적응했다"는 것. 테헤란로의 조용한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