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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한국 스타트업의 심장이 뛰는 곳: 유니콘을 꿈꾸는 2,300개 기업의 생존 보고서

시스템 관리자 2026-01-19 133 원문
요약: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밀집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주소를 분석한다. 투자 혹한기 속에서도 살아남는 기업들의 전략과 이 거리가 여전히 한국 혁신의 중심인 이유를 조명한다.

프롤로그: 새벽 3시,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

테헤란로 역삼역 3번 출구에서 선릉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자정이 넘어도 환하게 빛나는 사무실 창문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퇴근'이라는 단어 대신 '잠시 집에 다녀온다'는 표현을 쓴다. 1990년대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렸던 이 거리는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심장부로 기능하고 있다. 2025년 기준 테헤란로 일대에는 2,300여 개의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으며, 이 중 45%가 시리즈A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성장기 기업들이다.

그러나 화려한 외관 뒤에는 냉혹한 현실이 숨어 있다. 2024년 국내 벤처투자는 전년 대비 38% 감소한 6조 2천억 원에 그쳤고, 테헤란로의 공실률은 역대 최고치인 12.7%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리를 떠나지 않는 창업가들이 있다. 그들은 왜 이곳을 고집하는가. 생존을 넘어 성장을 모색하는 테헤란로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테헤란로의 지정학: 왜 이 거리인가

테헤란로가 스타트업의 성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85년 이란 테헤란과의 자매결연으로 명명된 이 도로는 1990년대 대기업 본사들이 들어서며 비즈니스 중심지로 부상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과 함께 첫 번째 스타트업 붐이 일었고,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같은 기업들이 이곳에서 성장했다. 현재 테헤란로 1km 반경 내에는 주요 벤처캐피털 47곳, 액셀러레이터 23곳, 정부 지원기관 12곳이 위치해 있다.

한국벤처투자 강남센터(테헤란로 151, 역삼역 3번 출구 도보 3분)는 이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에 열리는 '오피스아워'에서는 예비 창업자들이 무료로 투자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예약은 K-Startup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며, 평균 대기 기간은 2주 정도다.

스타트업 밀집 지역별 특성

  • 역삼동 권역: 초기 스타트업과 공유오피스 밀집. 평균 임대료 평당 8만 5천 원. 패스트파이브, 위워크 등 8개 공유오피스가 3,500석 규모로 운영 중
  • 삼성동 권역: 시리즈B 이상 성장기 기업 선호. 평균 임대료 평당 11만 원. 코엑스 인근으로 해외 투자자 미팅에 유리
  • 선릉동 권역: 핀테크, AI 특화 기업 집중.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접근성이 장점. 토스, 뱅크샐러드 등 핀테크 유니콘 본사 위치

부동산 전문가들은 테헤란로의 진정한 가치를 '네트워크 밀도'에서 찾는다.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잠재 투자자일 수 있고,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하다 경쟁사 대표와 마주칠 수 있는 곳. 이런 '의도치 않은 연결'이야말로 테헤란로가 다른 지역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이유다.

투자 혹한기의 생존 전략: 현장의 목소리

"2023년까지는 아이디어만 있어도 시드 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매출이 없으면 미팅 자체가 잡히지 않아요." AI 기반 법률 서비스 스타트업 '로앤테크'의 김현수 대표(34)는 달라진 투자 환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회사는 테헤란로 GS타워 17층에 입주해 있다. 월 임대료 1,200만 원. 창업 초기 판교 테크노밸리도 고려했지만, 결국 테헤란로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판교는 대기업 R&D 센터와 안정기에 접어든 기업들의 터전입니다. 하지만 저희처럼 매일 새로운 고객사를 만나야 하는 B2B 스타트업에게는 테헤란로의 접근성이 생명입니다. 법무법인, 대기업 법무팀 미팅이 하루에 3건씩 잡힐 때, 위치가 강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인사이더 팁 #1: 테헤란로 스타트업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역삼역 스타벅스 리저브' 2층이 비공식 네트워킹 장소로 통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경 '수요 밋업'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투자자와 창업자가 명함을 교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생존하는 스타트업의 3가지 공통점

테헤란로에서 15년간 스타트업을 취재해온 필자가 발견한 패턴이 있다. 투자 혹한기에도 살아남는 기업들은 예외 없이 세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첫째, 캐시카우를 먼저 확보한다. 화려한 비전보다 당장 돈이 되는 사업 모델에 집중한다. SaaS 스타트업 '플렉스팀'은 HR 솔루션 본업 외에 급여 정산 대행 서비스를 추가해 월 매출 8억 원을 창출하고 있다. 이 매출이 런웨이(자금 소진 전 생존 기간)를 18개월에서 36개월로 늘렸다.

둘째, 인력 구조를 유연화한다. 정규직 중심에서 프리랜서, 파트타임 개발자 협업 구조로 전환하는 추세다. 테헤란로 인근에는 '탤런트뱅크', '위시켓' 등 IT 인력 매칭 플랫폼 본사가 위치해 있어, 필요 시 48시간 내 전문 인력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셋째,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K-스타트업 그랜드챌린지', 서울시의 '서울창업허브' 프로그램은 사무공간과 초기 자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창구다. 서울창업허브 성수(테헤란로에서 지하철 15분 거리)는 최대 2년간 무상 입주가 가능하며, 월 500만 원 상당의 사무공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유니콘의 산실: 테헤란로 출신 성공 기업들

테헤란로는 이미 10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을 배출했다. 쿠팡(현 뉴욕증시 상장), 토스(기업가치 15조 원), 야놀자(기업가치 10조 원), 무신사(기업가치 3조 원) 등이 모두 이 거리에서 시작했거나 성장기를 보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테헤란로의 '밀도 높은 생태계'를 최대한 활용했다는 것이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과거 인터뷰에서 "창업 초기 선릉역 인근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는데, 반경 500미터 내에 은행 지점이 8개, 금융 관련 변호사 사무실이 20곳 이상 있었다"며 "핀테크 창업에 이보다 좋은 입지는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현재 주목받는 유망 스타트업 5곳

  • 스켈터랩스(테헤란로 127, AI 음성인식): 시리즈C 450억 원 투자 유치. 삼성전자, LG전자에 음성 AI 솔루션 공급
  • 센드버드(테헤란로 507, 채팅 API): 실리콘밸리 진출 성공. 연 매출 1,000억 원 돌파
  • 마켓컬리(테헤란로 152, 새벽배송): 2025년 흑자 전환 성공. IPO 추진 중
  • 직방(테헤란로 강남파이낸스센터, 부동산 플랫폼): 월 활성 사용자 800만 명. 메타버스 부동산 서비스 확장
  • 에이블리(테헤란로 134, 패션 커머스): Z세대 여성 앱 1위. 거래액 연 2조 원 돌파
인사이더 팁 #2: 이 기업들의 채용 공고를 주시하면 업계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최근 6개월간 테헤란로 유니콘 기업들이 가장 많이 채용한 직군은 1위 AI/ML 엔지니어, 2위 데이터 분석가, 3위 글로벌 사업개발 매니저 순이다.

투자자들이 말하는 테헤란로의 미래

"솔직히 말해서, 테헤란로 스타트업의 절반은 3년 내 사라질 겁니다." 테헤란로에서 15년간 초기 투자를 해온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의 권도균 대표는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낙관론도 펼쳤다. "하지만 살아남는 기업들은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혹한기는 체력이 약한 기업을 걸러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에요."

실제로 2024년 하반기부터 테헤란로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글로벌 VC들의 귀환이다. 세콰이아캐피탈, 앤드리슨호로위츠 등 실리콘밸리 톱티어 VC들이 한국 시장 재진입을 선언했고, 그들의 첫 번째 탐색 무대는 어김없이 테헤란로다. 이들은 특히 AI, 딥테크, 기후테크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2025년에만 5건 이상의 대형 투자를 집행했다.

테헤란로 스타트업 방문 가이드

스타트업 생태계를 직접 체험하고 싶다면, 다음 코스를 추천한다.

D.CAMP(디캠프)
주소: 서울 강남구 선릉로 551
운영시간: 평일 09:00-22:00, 주말 휴무
입장료: 무료 (1층 카페 및 이벤트 공간 개방)
교통: 선릉역 5번 출구 도보 5분
특징: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허브.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데모데이' 행사에서 신생 스타트업들의 피칭을 관람할 수 있다. 사전 예약 필수(dcampseoul.com).

마루180
주소: 서울 강남구 역삼로 180
운영시간: 평일 09:00-21:00
입장료: 무료 (1층 오픈 라운지)
교통: 역삼역 3번 출구 도보 7분
특징: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운영. 국내외 스타트업 관련 서적 3,000권을 보유한 도서관이 인상적이다.

팁스타운(TIPS Town)
주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311
운영시간: 평일 09:00-18:00
교통: 선정릉역 3번 출구 도보 3분
특징: 정부 TIPS 프로그램 선정 기업들이 입주. 분기별 '오픈하우스' 행사 시 일반인도 둘러볼 수 있다.

인사이더 팁 #3: 테헤란로 스타트업 문화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금요일 저녁 6시 이후 역삼역 인근을 걸어보라. 일주일간의 스프린트를 마친 스타트업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에 한국 스타트업의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다.

에필로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테헤란로의 밤은 길다. 그리고 그 긴 밤을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세 번째 창업에 도전하는 40대 연쇄창업가,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30대 개발자,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20대 대학생까지. 그들에게 테헤란로는 단순한 주소가 아니다. 가능성의 공간이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공유되는 커뮤니티다.

투자 혹한기라고들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 시작하는 기업들이 가장 강인한 체질을 갖추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창업한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그랬고,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후 살아남은 아마존과 구글이 그랬다. 테헤란로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한국의 다음 유니콘은 이 거리 어딘가에서 조용히 준비되고 있을 것이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심장은 오늘도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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