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디저트 문화의 새로운 좌표가 되다
2026년 1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새벽부터 줄이 늘어선다. 명품 매장이 아니다. 케이크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도 30분 이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한때 패션과 카페의 거리로 명성을 날렸던 이곳이 어느새 '디저트 순례지'로 탈바꿈했다. 인스타그램 태그 수 4,800만 건을 돌파한 가로수길 디저트 신(scene)의 실체를 파헤쳤다.
15년간 강남 지역을 취재해온 기자로서 단언컨대, 지금 가로수길의 디저트 신은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파리 르 꼬르동 블루 출신 파티시에들이 귀국해 가게를 열고, 일본 도쿄에서 역수입된 한국식 카스테라가 오마카세 코스로 제공되는 기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평범한 맛집 소개가 아닌, 이 거리에서 벌어지는 '디저트 전쟁'의 최전선을 보여드리겠다.
1. 뺑드셰프(Pain de Chef) - 새벽 4시 굽는 크루아상의 비밀
가로수길 초입, 신사역 8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뺑드셰프는 오전 10시면 크루아상이 동난다. 비밀은 새벽에 있다. 오너 셰프 박준혁 씨(37)는 매일 새벽 4시부터 버터 시트를 접기 시작한다. 프랑스 노르망디산 AOP 버터만을 고집하는 그의 크루아상은 겉은 유리처럼 부서지고, 속은 실타래처럼 늘어난다.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0길 25, 1층
대표 메뉴: 플레인 크루아상 6,500원, 아몬드 크루아상 8,200원, 크루아상 도레 9,500원
영업시간: 화~일 08:00-20:00 (월요일 휴무, 재료 소진 시 조기 마감)
연락처: 02-543-7821
인사이더 팁: 오전 8시 오픈과 동시에 방문해야 플레인 크루아상을 맛볼 수 있다. 토요일은 피하고, 화요일 아침이 가장 여유롭다. '주간 크루아상 예약'은 인스타그램 DM으로만 가능하며, 일주일 전 월요일 정오에 오픈된다.
2. 메종 드 뮈게(Maison de Muguet) - 예약 3주 대기의 케이크 공방
가로수길 세로수길 안쪽 골목에 숨어 있는 메종 드 뮈게는 간판조차 없다. 하얀 철문에 은방울꽃 문양만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곳의 케이크를 맛보기 위해 서울 전역에서, 아니 부산과 대구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다. 파리 페랑디(Ferrandi) 출신 김소연 셰프(34)가 하루에 만드는 케이크는 단 12개. 시그니처 '뮈게 블랑'은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 무스와 제주 감귤 콩피 레이어가 어우러진 걸작이다.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2길 31-4 (네이버 지도에 '은방울꽃 케이크'로 검색)
대표 메뉴: 뮈게 블랑(2인용) 58,000원, 쇼콜라 앙땅스 62,000원, 타르트 오 시트롱 35,000원
영업시간: 금~일 12:00-18:00 (완전 예약제)
예약: 카카오톡 채널 '메종드뮈게' (3주 전 금요일 오전 10시 예약 오픈)
인사이더 팁: 예약에 실패했다면 '노쇼 대기 리스트'를 활용하라. 카카오톡으로 당일 오전 9시에 문의하면 취소분을 안내받을 수 있다.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며, 케이크는 반드시 2시간 내 섭취해야 본래의 텍스처를 느낄 수 있다.
3. 온도다방 - 3대째 내려온 팥의 정수
화려한 프렌치 디저트 사이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곳이 있다. 1968년 을지로에서 시작해 2015년 가로수길로 이전한 온도다방은 '팥'이라는 단일 재료에 57년을 바쳤다. 3대째 가업을 잇는 이정민 대표(41)는 매일 새벽 경북 영주산 소적두를 직접 삶는다. 이곳의 '팥빙수'는 여름이 아닌 겨울에 더 빛난다. 따뜻한 팥죽 위에 얼음을 올린 '온빙수'는 오직 12월부터 2월까지만 맛볼 수 있는 계절 한정 메뉴다.
주소: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62길 18
대표 메뉴: 단팥죽 12,000원, 온빙수(겨울 한정) 16,000원, 팥시루떡(2인분) 18,000원
영업시간: 매일 11:00-21:00 (명절 휴무)
연락처: 02-547-0968
인사이더 팁: '팥앙금'만 따로 구매할 수 있다(500g, 25,000원). 집에서 토스트에 발라 먹으면 그 어떤 고급 스프레드보다 깊은 맛이 난다. 좌석은 8석뿐이니 평일 오후 3-4시 방문을 추천한다.
4. 아뜰리에 마카롱(Atelier Macaron) - 36가지 색의 예술
가로수길 중심부, 유독 파스텔톤 외관이 눈에 띄는 건물 2층. 아뜰리에 마카롱은 국내 마카롱 신의 교과서로 불린다. 프랑스 피에르 에르메 출신 최유진 셰프(39)가 매 시즌 선보이는 36가지 플레이버는 단순한 과자가 아닌 '먹는 예술'이다. 2026년 봄 컬렉션의 시그니처는 '제주 동백 앤 유자'. 동백꽃 인퓨전 가나슈와 유자 커드의 조합은 입 안에서 제주의 1월을 재현한다.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0길 37, 2층
대표 메뉴: 마카롱 개당 4,500원, 6구 세트 25,000원, 12구 시그니처 박스 48,000원
영업시간: 매일 11:00-20:00
연락처: 02-542-8892 / 네이버 예약 가능
주차 정보: 건물 내 주차 불가, 인근 공영주차장(강남구청 제2공영주차장) 이용 시 1시간 3,000원
교통편: 신사역 8번 출구 도보 7분, 압구정로데오역 5번 출구 도보 10분
인사이더 팁: 매월 1일에 공개되는 '먼슬리 스페셜'을 노려라. SNS에 공개되지 않는 비밀 플레이버가 있으며, 현장에서만 구매 가능하다. 마카롱은 냉장 보관 시 24시간 내, 냉동 보관 시 2주까지 맛을 유지한다.
5. 브레드 랩(Bread Lab) - 과학자가 만든 식빵 연구소
이곳의 주인은 제빵사가 아니다. 식품공학 박사 출신 정현우 대표(45)는 10년간 발효 연구에 몰두한 끝에 '72시간 저온 발효 식빵'을 완성했다. 일반 식빵의 발효 시간이 2-3시간인 것에 비해, 이 식빵은 3일을 기다려야 한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버터 향이 나고, 씹을수록 고소한 풍미가 올라온다. 한 덩어리에 28,000원이라는 가격에도 하루 생산량 50개가 오전 중 완판된다.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15길 42
대표 메뉴: 72시간 발효 식빵 28,000원, 우유 식빵 18,000원, 통밀 캄파뉴 22,000원
영업시간: 수~일 10:00-18:00 (월·화 휴무)
연락처: 02-545-3721 / 카카오톡 '브레드랩' 당일 예약
인사이더 팁: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주간 예약'이 열린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전국 배송도 가능하지만, 갓 구운 빵의 감동을 원한다면 현장 방문이 필수다. 식빵은 절대 냉장하지 말고, 상온에서 이틀, 이후엔 냉동 보관하라.
6. 카페 코무(Café KOMU) - 빈티지 공간의 비건 디저트
가로수길 끝자락, 1970년대 단독주택을 개조한 카페 코무는 '비건 디저트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편견을 깨는 곳이다. 뉴욕 Natural Gourmet Institute 출신 이수빈 셰프(32)는 버터, 계란, 우유 없이도 감탄을 자아내는 케이크를 만든다. 시그니처 '초코 아보카도 무스'는 아보카도 특유의 크리미함이 다크 초콜릿과 어우러져, 비건이 아니어도 찾게 되는 중독성을 자랑한다.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4길 55
대표 메뉴: 초코 아보카도 무스 14,000원, 당근 케이크(글루텐프리) 12,000원, 코코넛 티라미수 15,000원
영업시간: 화~일 12:00-20:00 (월요일 휴무)
연락처: 02-549-5521
주차 정보: 건물 앞 2대 주차 가능(무료), 주말에는 주변 유료 주차장 이용
교통편: 압구정로데오역 5번 출구 도보 12분
인사이더 팁: 2층 다락방 좌석은 예약제다. 인스타그램 DM으로 3일 전 신청하면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비건이 아닌 손님에게는 '하프 앤 하프 세트'를 추천한다. 비건 케이크와 일반 케이크를 함께 맛보며 비교할 수 있다.
7. 스위트 바흐(Sweet Bach) - 클래식과 함께하는 디저트 살롱
가로수길 디저트 투어의 마지막은 스위트 바흐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디저트 살롱'이다. 매주 금·토요일 저녁 7시, 15석 한정으로 열리는 '디저트 콘서트'에서는 현역 음악가의 실내악 연주와 함께 7코스 디저트를 즐긴다. 빈 국립음대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파티시에인 한서윤 대표(36)의 이력이 만들어낸 독특한 경험이다.
주소: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60길 22, 2층
대표 메뉴: 아포가토 15,000원, 오페라 케이크 16,000원, 디저트 콘서트 코스(7코스+음료) 85,000원
영업시간: 화~일 13:00-21:00 / 콘서트 금·토 19:00-21:30
예약: 네이버 예약, 디저트 콘서트는 1주 전 화요일 정오 오픈
인사이더 팁: 디저트 콘서트 예약에 실패했다면 일반 영업시간에 방문해 '미니 코스(4종)'를 주문하라(42,000원). 콘서트 메뉴의 하이라이트만 맛볼 수 있다. 와인 페어링(+35,000원)을 추가하면 디저트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로수길 디저트 투어, 이렇게 즐겨라
7곳을 모두 방문하려면 최소 이틀이 필요하다.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첫째 날은 신사역 인근(뺑드셰프 → 아뜰리에 마카롱 → 브레드 랩), 둘째 날은 세로수길과 이면도로(메종 드 뮈게 → 온도다방 → 카페 코무 → 스위트 바흐) 순서를 추천한다.
- 예산: 1인 기준 1일 5-7만 원 (테이크아웃 위주 시 3-4만 원)
- 최적의 방문 시간: 평일 오전 10-11시 (주말은 모든 곳이 대기 필수)
- 필수 준비물: 보냉백(케이크 테이크아웃 시), 현금(온도다방은 현금 결제 5% 할인)
가로수길의 디저트 신은 매 분기 변한다. 새로운 가게가 열리고, 한때 줄 섰던 곳이 조용히 문을 닫는다. 그러나 오늘 소개한 7곳은 적게는 3년, 많게는 반세기를 버텨온 '검증된' 명소들이다. 유행을 좇는 디저트가 아닌, 진짜 장인의 손맛을 찾는다면 이 리스트가 답이다.
서울의 디저트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청담동의 프리미엄, 성수동의 힙함 사이에서 가로수길은 '깊이'로 승부한다. 새벽부터 반죽을 치대는 손, 3대째 팥을 삶는 정성, 72시간을 기다리는 인내. 이것이 가로수길 디저트가 특별한 이유다. 한 조각의 케이크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 떠나보라. 그 여정 자체가 이미 달콤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