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서울 미식 지도의 정점에 서다
토요일 저녁 7시, 청담동 명품거리 이면도로. 발렛파킹을 기다리는 고급 세단들 사이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커플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간판도 없는 건물 2층, 예약 없이는 존재조차 알 수 없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청담동에서 15년간 미식을 취재해온 기자로서 단언컨대, 이 동네의 파인다이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 경험이자, 서울이 세계 미식 지도에서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를 증명하는 현장이다.
2024년 미슐랭 가이드 서울에서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35곳 중 11곳이 강남구에 위치해 있고, 그중 7곳이 청담동과 압구정동에 밀집해 있다. 코로나19 이후 '보복 소비'와 맞물려 프리미엄 다이닝 시장은 연평균 23% 성장했다. 1인당 30만 원을 훌쩍 넘기는 코스 요리에 3개월 전부터 예약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미슐랭 2스타의 무게: 정식당과 모수
정식당 (Jungsik) - 한식의 재해석, 그 끝판왕
청담동 파인다이닝을 논할 때 정식당을 빼놓을 수 없다. 임정식 셰프가 이끄는 이곳은 2024년 미슐랭 2스타를 유지하며 한식 파인다이닝의 정점에 서 있다. 뉴욕 지점 역시 미슐랭 2스타를 보유한,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곳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정식당 비빔밥'은 전통 비빔밥의 개념을 완전히 해체한다. 한우 육회와 캐비어, 참기름 에스푸마가 만나 입안에서 폭발하는 감칠맛은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 충격에 가깝다. 디너 코스는 크게 시그니처 코스(28만 원)와 그랜드 코스(38만 원)로 나뉘며, 와인 페어링을 추가하면 15만 원이 더해진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선릉로158길 11
- 영업시간: 화~토 런치 12:00-14:00, 디너 18:00-21:00 (일·월 휴무)
- 예약: 캐치테이블, 공식 홈페이지 (매월 1일 다음 달 예약 오픈)
- 교통: 압구정로데오역 5번 출구 도보 8분
- 주차: 발렛파킹 가능 (무료)
모수 (Mosu) - 제주의 숨결을 담은 서울의 밤
청담동 한복판, 안국선 셰프의 모수 서울은 2024년 미슐랭 2스타와 함께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 식재료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프렌치 테크닉의 결합은 '로컬리즘'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실체화한다.
14가지 코스로 구성된 디너(35만 원)는 제주 전복, 흑돼지, 감귤 등 섬의 산물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해낸다. 특히 '제주 바다'라는 이름의 디시는 해초와 성게, 조개를 마치 바닷속 풍경처럼 플레이팅해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와인 페어링(18만 원)은 소믈리에 김유진의 섬세한 해설과 함께하며, 내추럴 와인을 선호한다면 별도 요청이 가능하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7 청담스퀘어 4층
- 영업시간: 화~토 18:00-22:00 (일·월 휴무)
- 예약: 공식 홈페이지 전용 (매월 15일 오전 11시 익월 예약 오픈)
- 교통: 청담역 9번 출구 도보 5분
- 주차: 건물 내 지하주차장 (2시간 무료, 이후 10분당 1,000원)
숨은 보석들: 미슐랭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곳
리스토란테 에오 (Ristorante Eo) - 이탈리안의 새로운 문법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이지만, 청담동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가장 과소평가된 파인다이닝'으로 통한다. 어윤권 셰프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10년간 수련한 후 귀국해, 한국 식재료로 이탈리안을 재창조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트러플 시즌(11월~2월)에 방문한다면 알바 화이트 트러플을 아낌없이 깎아주는 파스타는 필수다. 리조또 위에 눈처럼 내리는 트러플 향은 청담동의 어떤 이탈리안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농도를 자랑한다. 런치 코스(12만 원)는 저녁 대비 가성비가 뛰어나 '입문용'으로 추천할 만하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선릉로162길 17
- 영업시간: 화~일 런치 12:00-14:30, 디너 18:00-21:30 (월 휴무)
- 예약: 캐치테이블, 네이버 예약
- 교통: 압구정로데오역 5번 출구 도보 10분
- 주차: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건물 내 주차 불가)
스시 인 (Sushi In) - 청담동 오마카세의 숨은 강자
간판 없는 레스토랑의 대명사. 스시 인은 8석뿐인 카운터에서 김인 셰프가 직접 스시를 쥐어준다. 쓰키지 시장에서 공수한 참치와 국내산 자연산 광어의 조화는 긴자의 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오마카세 단일 코스(45만 원)로 운영되며, 20여 가지 스시와 안주가 2시간에 걸쳐 제공된다. 특히 숙성 기술에 대한 김 셰프의 집착은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14일간 숙성한 참치 뱃살의 녹진함은 입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53길 15 (상호 간판 없음, 검은 문 건물)
- 영업시간: 월~토 17:30-22:00 (일 휴무), 1부 17:30 / 2부 20:30
- 예약: 전화 예약만 가능 (02-548-9900), 한 달 전 같은 날짜 오전 10시 오픈
- 교통: 청담역 8번 출구 도보 7분
- 주차: 발렛파킹 (1만 원)
데이트를 위한 전략적 선택
청담동 파인다이닝은 단순한 미식을 넘어 특별한 순간을 연출하는 무대가 된다. 프러포즈, 기념일, 혹은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까지—목적에 따라 선택은 달라져야 한다.
분위기 중심: 밍글스 (Mingles)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밍글스는 '한식의 현대화'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낸다. 김민구 셰프의 요리는 할머니의 손맛과 프렌치 테크닉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창가 자리에서 바라보는 청담동 야경과 함께라면, 어떤 고백도 성공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67길 19
- 가격: 디너 코스 22만 원, 와인 페어링 12만 원
- 팁: 창가 테이블 요청 시 예약 메모에 '특별한 날'임을 언급하면 배려받을 확률이 높다
프라이빗 다이닝: 라망시크레 (L'Amant Secret)
완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 프렌치 레스토랑은 1일 1팀만 받는다. 18평 공간 전체가 오롯이 당신만의 것이 된다. 셰프가 직접 테이블로 나와 요리를 설명하고, 소믈리에가 와인을 서빙하는 동안 세상과 단절된 시간이 흐른다.
- 주소: 서울 강남구 학동로97길 23 (비공개 입구, 예약 확정 시 안내)
- 가격: 2인 기준 코스 150만 원 (와인 페어링 포함)
- 예약: 카카오톡 채널 '@라망시크레' (2개월 전 예약 필수)
인사이더만 아는 청담동 파인다이닝 팁
15년 취재 기자가 공개하는 핵심 노하우 7가지
첫째, 예약 오픈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라. 인기 레스토랑은 예약 오픈 후 5분 내에 한 달 치가 마감된다. 캐치테이블 알림 설정은 기본이고,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통해 임시 오픈 좌석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정식당의 경우 매월 1일 오전 11시, 모수는 매월 15일 오전 11시가 예약 전쟁의 시작이다.
둘째, 런치를 노려라. 같은 셰프, 같은 식재료지만 런치 코스는 디너의 40~60% 가격이다. 밍글스 런치(13만 원), 정식당 런치(18만 원)는 입문자에게 완벽한 선택이다. 단, 런치는 좌석 수가 적어 더 빨리 마감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하라.
셋째, 노쇼(No-show)를 노려라. 당일 오전 10시경 전화를 걸면 취소석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일요일 저녁, 평일 런치에 빈자리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넷째, 와인 페어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파인다이닝에서 와인 페어링을 건너뛰는 것은 교향곡에서 바이올린을 빼는 것과 같다. 소믈리에가 각 코스에 맞춰 선별한 와인은 요리의 숨은 맛을 끌어낸다. 가격이 부담된다면 '하프 페어링'(3~4잔)을 요청하라.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응해준다.
다섯째, 특별한 날임을 미리 알려라. 생일, 기념일, 프러포즈를 예약 시 메모에 남기면 디저트에 축하 플레이팅이 추가되거나, 좋은 자리로 배정받을 수 있다. 프러포즈의 경우 반지를 미리 맡기면 디저트와 함께 서빙해주는 레스토랑도 있다.
여섯째, 드레스 코드를 확인하라. 청담동 파인다이닝 대부분은 스마트 캐주얼 이상을 요구한다. 반바지, 슬리퍼, 운동복 차림은 입장이 거부될 수 있다. 남성은 카라 있는 셔츠, 여성은 원피스나 블라우스 정도면 무난하다.
일곱째, 소믈리에와 친해져라. 자주 방문하는 단골이 되면 오프 메뉴, 비공개 와인 리스트, 셰프 테이블 우선 배정 등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식사 후 소믈리에에게 와인에 대한 소감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시작된다.
청담동 파인다이닝의 미래
2026년 현재, 청담동 파인다이닝 씬은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미슐랭 스타를 향한 경쟁은 여전하지만, 최근에는 '지속가능성'과 '로컬리즘'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모수가 제주 식재료에 집중하듯, 젊은 셰프들은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의 숨은 식재료를 발굴하고 있다.
동시에 가격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1인당 50만 원을 넘기는 초고가 레스토랑이 늘어나는 한편, 15만 원대 '접근 가능한 파인다이닝'을 표방하는 곳도 등장하고 있다. 후자의 대표주자인 '론니스'(도산대로51길)는 오픈 1년 만에 미슐랭 빕구르망에 선정되며 주목받고 있다.
결국 청담동 파인다이닝은 단순한 외식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미식적 자존심이자, 한국 요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연구실이며, 특별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에 새기는 무대다. 예약 버튼을 누르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오늘 밤, 당신은 어떤 맛의 기억을 만들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