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왜 지금 다시 편집숍인가
2024년 글로벌 패션 매거진 보그는 서울 가로수길을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패션 스트리트'로 선정했다. 그 중심에는 대형 SPA 브랜드가 아닌, 편집숍이 있었다. 가로수길 편집숍은 단순한 옷가게가 아니다. K패션의 미래를 읽는 창이자, 글로벌 바이어들이 서울 출장 때 반드시 들르는 '패션 인텔리전스 허브'다.
최근 3년간 가로수길에는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임대료 상승으로 대형 브랜드들이 떠난 자리를 큐레이션에 특화된 소규모 편집숍들이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십만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부터 20년 경력의 패션 에디터까지, 각자의 안목으로 공간을 채운다. 오늘 소개할 7개의 편집숍은 15년간 강남 지역을 취재해온 기자의 눈으로 엄선한, 진정한 '인사이더 리스트'다.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 발굴형 편집숍
1. 아카이브앤크(Archive&K)
가로수길 메인 거리에서 한 블록 들어간 골목, 낡은 연립주택 2층에 자리한 이 공간은 한국 패션계의 '인큐베이터'로 불린다. 운영자 김서영 대표는 전직 삼성물산 패션부문 MD 출신으로, 그의 눈을 거친 브랜드 중 3개가 현재 서울패션위크 공식 참가 브랜드로 성장했다. 동대문에서 갓 독립한 신진 디자이너부터 해외 패션스쿨 졸업생까지, 국내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브랜드 15여 개를 큐레이션한다.
가격대는 재킷 18만~45만 원, 원피스 12만~28만 원 선으로, 백화점 입점 브랜드 대비 30~40% 저렴하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디자이너와 고객이 직접 만나는 '트렁크쇼'가 열리는데, 이때 맞춤 수선 서비스를 50% 할인된 가격에 받을 수 있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0길 25, 2층
- 영업시간: 화~토 12:00-20:00, 일·월 휴무
- 연락처: 02-547-0821
- 교통: 신사역 8번 출구 도보 7분
2. 룸포유(Room for You)
2023년 오픈 이후 패션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비밀 아지트'로 통하는 곳이다. 30평 남짓한 공간에 국내 신진 브랜드 8개와 일본·대만 인디 브랜드 5개를 함께 선보인다. 특히 젠더리스 패션에 강점이 있어, 남녀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오버사이즈 실루엣 제품이 주력이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스타일링 세션'이다. 사전 예약 시 전문 스타일리스트와 1시간 동안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구매와 상관없이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 제안서를 받아간다. 재방문율이 70%를 넘는 비결이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2길 31, 1층
- 영업시간: 수~일 13:00-21:00, 월·화 휴무
- 연락처: 0507-1357-8892
- 가격대: 상의 8만~22만 원, 하의 10만~25만 원
빈티지의 재해석: 시간을 파는 편집숍
3. 세컨드선셋(Second Sunset)
가로수길 빈티지숍의 '레전드'로, 1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순히 오래된 옷을 파는 것이 아니다. 운영자 박준혁 대표는 매 시즌 유럽과 일본을 직접 돌며 1970~90년대 하이엔드 브랜드 빈티지를 공수해온다. 이세이 미야케 플리츠 라인, 마르지엘라 초기작, 꼼데가르송 아카이브 피스 등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들이 즐비하다.
가격은 5만 원대 액세서리부터 300만 원대 아카이브 피스까지 폭넓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는 가격이 아닌 '정품 보증'에 있다. 모든 제품에 진품 인증서와 컨디션 리포트가 제공되며, 구매 후 1주일 내 무조건 환불이 가능하다.
- 주소: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62길 41
- 영업시간: 매일 12:00-21:00 (명절 휴무)
- 연락처: 02-515-9930
- 주차: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시간당 3,000원)
4. 리버스랩(Reverse Lab)
빈티지를 '재해석'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1980년대 리바이스 데님 재킷에 한국 전통 자수를 더하거나, 밀리터리 재킷을 해체해 새로운 실루엣으로 재구성한 '업사이클 빈티지'를 만난다. 운영자 이하늘 디자이너는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 출신으로, 지속가능 패션과 한국적 미학의 결합을 실험한다.
모든 제품이 단 하나뿐인 '원 오브 원'이라 재고 소진 시 같은 제품을 다시 구할 수 없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에 신규 입고가 이뤄지는데, 이때를 노려 방문하면 가장 다양한 선택지를 만날 수 있다.
- 주소: 서울 강남구 논현로153길 62, 지하 1층
- 영업시간: 목~월 14:00-20:00, 화·수 휴무
- 연락처: 인스타그램 DM 예약 (@reverse_lab_seoul)
- 가격대: 15만~80만 원
글로벌 셀렉션: 세계를 담은 편집숍
5. 커넥트서울(Connect Seoul)
가로수길에서 가장 '국제적인' 공간이다. 파리, 밀라노, 도쿄, 코펜하겐 4개 도시의 현지 바이어와 직접 계약한 독점 브랜드 20여 개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북유럽 미니멀 브랜드와 일본 장인 브랜드 컬렉션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의 강점은 '글로벌 프라이싱'이다. 해외 직구 대비 관세와 배송비를 고려하면 오히려 저렴한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직접 입어보고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외국인 관광객 비율이 40%에 달해 영어와 일본어 응대가 가능하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0길 18
- 영업시간: 매일 11:00-21:00
- 연락처: 02-549-2288
- 교통: 신사역 8번 출구 도보 5분
- 주차: 건물 내 주차 가능 (구매 고객 2시간 무료)
6. 포레스트앤드(Forest&)
아웃도어와 시티웨어의 경계를 허무는 편집숍이다. 파타고니아, 아크테릭스 같은 기능성 브랜드부터 스노우피크, 앤드원더 같은 감성 아웃도어까지, '도시에서도 입을 수 있는 아웃도어'를 테마로 큐레이션한다. 최근 골프웨어와 테니스웨어 라인도 추가해 3040 직장인들의 주말 룩 성지로 떠올랐다.
매장 2층에는 작은 카페가 있어, 쇼핑 전 커피 한 잔과 함께 그 시즌 스타일북을 넘겨볼 수 있다. 신제품 출시 때마다 발행하는 이 스타일북은 한정판으로, 수집하는 마니아도 있을 정도다.
- 주소: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60길 35
- 영업시간: 화~일 11:30-20:30, 월 휴무
- 연락처: 02-543-7720
- 가격대: 상의 12만~45만 원, 재킷 25만~90만 원
K패션의 정수: 국내 디자이너 특화 편집숍
7. 한양셀렉트(Hanyang Select)
이름처럼 100%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만을 다루는 편집숍이다. 해외파 디자이너가 아닌, 국내 패션 교육을 받고 국내 시장에서 성장한 브랜드에 집중한다. 'K패션'이라는 말이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님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입점 브랜드 선정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친환경 소재 사용 여부, 국내 생산 비율, 디자이너의 브랜드 철학까지 꼼꼼히 따진다. 덕분에 이곳에서 옷을 구입하면 단순 소비가 아닌 '한국 패션 생태계에 대한 투자'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12길 49, 2층
- 영업시간: 수~일 12:00-20:00, 월·화 휴무
- 연락처: 0507-1408-3321
- 가격대: 10만~35만 원 (가성비 우수)
가로수길 편집숍 탐방, 인사이더 팁 5가지
첫째, 평일 오후 2~4시를 노려라. 주말은 인파로 북적이고, 오전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다. 평일 오후가 가장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둘째, 인스타그램 팔로우는 필수다. 대부분의 편집숍이 신상품 입고나 한정 세일을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먼저 공지한다. 관심 있는 매장은 알림 설정까지 해두자.
셋째, 협소한 피팅룸을 대비하라. 소규모 편집숍 특성상 피팅룸이 작거나 없는 경우도 있다. 탈의가 쉬운 옷차림으로 방문하면 훨씬 편하게 쇼핑할 수 있다.
넷째, 수선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라. 편집숍의 장점 중 하나가 맞춤 수선 연계 서비스다. 기성복을 내 몸에 맞게 수선하면 완성도가 확 달라진다. 구매 시 수선 가능 여부를 꼭 물어보자.
다섯째, 세로수길까지 영역을 넓혀라. 가로수길 본 거리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실력파 편집숍들이 '세로수길'이라 불리는 골목으로 이동했다. 메인 거리만 보고 돌아가면 진짜 보석을 놓칠 수 있다.
마치며: 가로수길 편집숍이 특별한 이유
가로수길 편집숍 탐방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다. 각 공간에는 운영자의 철학이 녹아 있고, 그들이 발굴한 브랜드에는 디자이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량생산 패스트패션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옷 한 벌에 담긴 서사'를 만나는 시간이다.
K패션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그 흐름의 최전선에 가로수길 편집숍이 있다. 백화점 쇼핑에 지쳤다면, 온라인 쇼핑몰의 끝없는 스크롤이 피로하다면, 이번 주말 가로수길로 향해보자. 안목 있는 큐레이터들이 엄선한 옷들 사이에서, 어쩌면 당신의 다음 시즌 스타일을 정의할 단 하나의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