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스카이라인 아래, 천년의 고요가 숨 쉬는 곳
서울 강남구 삼성동. 7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찌르고, 분주한 비즈니스맨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이 도심 한복판에 794년 역사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봉은사. 신라 원성왕 10년(794년)에 창건된 이 천년고찰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분주한 상업지구 한 가운데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코엑스몰에서 도보로 단 5분,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1번 출구에서 3분 거리. 이 압도적인 접근성이 오히려 봉은사 템플스테이를 특별하게 만든다.
2024년 한 해 동안 봉은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인원은 1만 2천여 명을 넘어섰다. 특히 20-40대 직장인 참가자가 전체의 67%를 차지하며, 이른바 '번아웃 세대'의 새로운 힐링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템플스테이재단 통계에 따르면 봉은사는 전국 사찰 중 참가자 수 기준 상위 5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왜 현대인들은 산 깊숙한 절이 아닌, 도심 한복판의 사찰을 찾는 것일까.
48시간의 전환점: 봉은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완전 해부
봉은사 템플스테이는 크게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당일형 '템플라이프', 1박 2일 '휴식형', 그리고 '체험형'이 그것이다. 각 프로그램은 참가자의 시간과 목적에 따라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당일형 템플라이프 (체험 시간: 약 3-4시간)
가장 접근성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평일 기준 오후 2시에 시작해 오후 6시경 마무리된다. 사찰 안내와 예절 교육으로 시작해, 108배 명상, 다도 체험, 연등 만들기 또는 염주 만들기 중 선택 가능한 공예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참가비는 1인 5만원. 점심 공양은 포함되지 않으나, 사전 신청 시 발우공양(1만원 추가)을 체험할 수 있다.
1박 2일 휴식형 프로그램
봉은사 템플스테이의 진수를 경험하려면 최소 1박이 필요하다. 토요일 오후 3시 입재부터 일요일 점심 공양 후 회향까지, 약 22시간 동안 진행된다. 참가비는 1인 8만원이며, 모든 식사와 숙박이 포함된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 첫째 날 오후 3시: 입재 및 오리엔테이션, 수련복 배부
- 오후 4시: 사찰 순례 및 봉은사 역사 탐방
- 오후 5시 30분: 저녁 공양 (발우공양)
- 오후 7시: 예불 참석 및 108배
- 오후 9시: 취침 (스님과의 차담은 비정기적으로 진행)
- 둘째 날 새벽 4시: 도량석(새벽 예불 전 목탁 소리)
- 새벽 4시 30분: 새벽 예불 참석
- 오전 6시: 아침 공양
- 오전 8시: 참선 또는 명상
- 오전 10시: 다도 체험 및 소감 나눔
- 정오: 점심 공양 후 회향
특히 새벽 4시 도량석은 봉은사 템플스테이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목탁 소리가 고요한 사찰에 울려 퍼지면 참가자들은 일상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적막과 마주하게 된다. 코엑스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보이는 창 너머, 새벽을 깨우는 범종 소리는 도시인에게 일종의 '시공간 이탈' 경험을 선사한다.
발우공양: 밥 한 그릇에 담긴 수천 년의 가르침
발우공양은 템플스테이 경험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시간이다. 네 개의 나무 그릇(발우)에 밥, 국, 반찬, 물을 담아 먹는 전통 사찰 식사법으로,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수행이 된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닦은 물까지 마시는 과정은 현대인의 음식 소비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봉은사의 사찰음식은 선재스님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한다.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사용하지 않는 청정한 채식이지만, 그 맛은 결코 심심하지 않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전통 장류와 제철 채소가 어우러진 반찬들은 '사찰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감탄을 자아낸다. 계절에 따라 메뉴가 바뀌는데, 겨울철에는 동치미와 시래기된장국이, 봄에는 냉이와 달래를 활용한 나물이 식탁에 오른다.
명상과 108배: 몸과 마음을 비우는 시간
봉은사 템플스테이의 핵심은 명상과 108배다. 108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절을 할 때마다 번뇌 하나를 내려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육체적 수련과 정신적 정화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처음 해보는 참가자들은 50배쯤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80배가 넘어가면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108배를 마치고 일어섰을 때의 그 묘한 해방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봉은사의 명상 프로그램은 좌선(앉아서 하는 명상)과 행선(걸으면서 하는 명상)으로 구성된다.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스님이 직접 호흡법과 자세를 지도한다. 특히 봉은사 경내의 미륵대불 앞에서 진행되는 명상 시간은 많은 참가자들이 '인생 명상'으로 꼽는 순간이다. 23미터 높이의 거대한 미륵대불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도심의 소음조차 배경음악처럼 느껴지는 역설적인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숙소와 시설: 예상을 뛰어넘는 쾌적함
템플스테이 숙소에 대한 걱정은 기우다. 봉은사 템플스테이 전용 숙소는 온돌방으로, 4-6인실 기준으로 운영된다. 개인 이불과 베개가 제공되며, 난방 시설이 완비되어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지만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온수 사용도 가능하다. 개인 세면도구와 수건은 지참해야 한다.
주의사항: 사찰 내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이 제한된다. 완전한 디지털 디톡스를 원하는 참가자에게는 축복이지만, 업무 연락이 빈번한 직장인은 미리 '부재중' 알림을 설정해두는 것이 좋다. 다만 긴급 상황시에는 사무실을 통해 연락이 가능하다.
예약부터 준비물까지: 실전 가이드
예약 방법
봉은사 템플스테이 예약은 템플스테이 공식 홈페이지(www.templestay.com)를 통해 가능하다. 봉은사 직접 예약은 전화(02-3218-4895)로도 가능하다. 주말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아 최소 2-3주 전 예약을 권장한다. 특히 연휴 기간이나 벚꽃 시즌(4월), 단풍 시즌(10-11월)에는 한 달 전 예약도 어려울 수 있다.
상세 정보
-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 전화번호: 02-3218-4895 (템플스테이 사무실)
- 운영시간: 사찰 개방 04:00-22:00 / 템플스테이 사무실 09:00-18:00
- 참가비: 당일형 5만원 / 1박 2일 8만원 / 체험형(2박 이상) 협의
- 교통: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1번 출구 도보 3분, 2호선 삼성역 6번 출구 도보 10분
- 주차: 사찰 내 무료 주차 가능 (단, 주말에는 만차 빈번)
준비물 체크리스트
- 개인 세면도구 (치약, 칫솔, 샴푸, 비누)
- 개인 수건
- 여벌의 속옷 및 양말
- 슬리퍼 (실내용)
- 따뜻한 겉옷 (새벽 예불 시 추울 수 있음)
- 필기도구 (소감문 작성용)
- 편한 마음
인사이더 팁 3가지
첫째, 새벽 예불 후 해가 뜨는 시간에 미륵대불 앞에서 사진을 찍어라. 조명 없이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둘째, 봉은사 경내 '진여문' 앞 은행나무는 수령 500년이 넘는 보호수다. 이 나무 아래서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라.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나무'로 불린다.
셋째, 템플스테이 회향 후 사찰 바로 옆 봉은사 전통찻집에서 연잎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겨라. 템플스테이 참가자에게는 10% 할인이 적용된다.
왜 도심 템플스테이인가: 봉은사만의 특별함
깊은 산속 사찰에서의 템플스테이도 의미 있지만, 봉은사는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바로 '일상과의 거리'다. 산사를 찾으면 물리적으로 일상과 단절되지만, 봉은사에서는 도심 한복판에서도 내면의 고요를 찾을 수 있음을 체험한다. 코엑스의 불빛이 보이는 곳에서 새벽 예불을 드리는 경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도 '언제든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실제로 봉은사 템플스테이 참가자 설문조사 결과, 재참가 의향이 89%에 달했다. '직장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었다'는 응답은 76%, '수면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응답은 61%였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강남 한복판에서 무슨 수행이 되겠나 싶었는데, 오히려 익숙한 도시 풍경 속에서 고요를 찾는 경험이 더 강렬했어요. 퇴근 후에도 봉은사에 들러 잠깐 명상하게 됐습니다."
봉은사 템플스테이는 특별한 휴가가 아니라도, 평범한 주말을 비범하게 바꿀 수 있는 선택지다. 삼성동 고층빌딩 숲 사이로 들려오는 범종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794년 역사의 천년고찰이, 2026년을 사는 당신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